
이는 세계인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고, 역사를 위해 정리, 설명되어야 할 과제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여러 설명이 시도되었고, 필자의 최근 저서 『한국 경제성장의 정치경제학: 성찰과 교훈』(2026)도 그런 시도의 일부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정체된 경제와 분열된 사회
오늘날 한국경제는 다시 정체에 빠져있고, 정치·사회는 깊이 분열되어 있다. 지난 10여년 한국의 성장률은 세계평균성장률을 훨씬 밑돌았다. 최근 들어 AI 투자 붐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와 가격 급등으로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두 기업의 이익이 폭증하며 예상치 못했던 경제활황이 일어나고 있으나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미국, 중국, 일본이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영구히 이런 독식을 누리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시장의 생리이고 역사이다.
미중 갈등 심화, 미국의 대중국 기술·무역제재, 국제질서의 개편이 겹치며 지금 한국의 방산, 조선,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정체되어 있던 한국경제에 숨쉴 공간을 주는 단비와 같으나, 바로 그런 외부환경 변화로 인해 국가전체로 보아 치루어야 하는 비용청구서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한국경제는 고령화, 저출산, 근로시간과 생산성 저하 등이 이어지고, 반도체 등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전 산업이 중국산업의 강력한 추격으로 구조적 침체에 들어선지 오래되었다.
이러한 침체와 동시에 한국은 경제의 이중구조 심화와 양극화, 정치의 퇴행, 사회적 갈등과 분열 심화, 불신사회의 문제를 심각하게 앓고 있다. 조선 말, 일제 강점기, 해방 후 토지개혁,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분계급질서가 완전히 붕괴되며 1950년대 중반 이후 모든 한국인들이 거의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면서 용암처럼 분출된 역동성은 아쉽게도 약 한 세대에 그치고 말았다. 1980년대 이후 기득권이 형성, 고착화되면서 계층간 사다리는 좁아졌고, 빈부격차, 경제의 이중구조는 심화되었으며,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산업생태계의 활성은 제약되어있다.
지난 수십 년, 한국의 정치, 국가운영체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구조개혁은 적체되고, 자원배분은 왜곡되어 위기가 왔을 때에야 외압에 의존해 겨우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위기의존형 국가가 되었으며,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는 희망보다 좌절감이 팽배해 있다. 혁신과 구조조정이 점점 어려워진 정치, 행정, 산업, 노조, 시민사회의 구조가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민주화는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로 이념화 되며 후쿠야마(2012)가 지적한 vetocracy의 늪에 빠져 있지 않은 지 돌아봐야 한다.
위기와 도전, 새로운 도약의 기회
지난 70년 남다른 경제적, 정치적, 예능적 성취를 이룬 나라의 국민행복도는 여전히 낮다. 유엔 (UN SDSN)의 지원을 받아 국가별 행복도를 비교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의하면 2026년 한국민의 행복도는 조사대상 144개국 중 67위이다. 기대수명 세계 최고, 1인당 GDP세계 상위권, 치안과 의료서비스접근도 최상위 수준인 나라에서 행복도는 그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낮은 사회적 신뢰와 약한 공동체 연대의식, 타인에 대한 낮은 관용, 부패, 치열한 경쟁과 높은 스트레스 등을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묻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성공의 역사는 끝났는가?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도전의 핵심은 경제의 구조적 정체와 양극화 심화, 정치의 퇴행적 변화와 분열·갈등의 심화, 사회적 신뢰의 취약성이며 이를 개선시켜나갈 국가의 비전과 능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단기적 부양과 자주 다가오는 선거 승리에 집중하며 장기적 시각을 잃고, 구조적 문제의 심화를 외면해 왔다. 때로 그러한 시도가 있더라도 정치적 갈등 속에 쉽게 실종되어 왔다. 국제질서의 개편, AI 혁명으로 인한 문명의 대전환을 눈앞에 두고 한국은 장기적 시각으로 미래전략을 마련하고, 실행할 능력을 잃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출범 이후 늘 갖가지 도전에 직면해왔고, 또한 한국이 당면한 대부분의 문제들은 지금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들은 아니다. 세계화 시대의 오늘날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이 이 도전들을 잘 극복해 나가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며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토인비나 국가 흥망성쇠를 연구한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도전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공동체의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서 있는 지점도 바로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에서 찾는 희망, 글로벌 젊은 세대
필자는 여전히 한국의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한국은 사람 밖에 가진 것이 없고, 사람 때문에 일어선 나라이다. 70년전 한국인과 지금의 한국인은 또 크게 다르다. 해방직후 한국인의 문맹률은 80%에 가까웠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한국인들의 교육수준은 경제성장만큼이나 가파르게 올라왔다.

1950년대 이후 초·중등학교 진학률에서부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일본과 미국을 제치고 대학진학률 세계 1위에 올라있다. 아마도 세계 최장의 사교육 시간까지 합치면 지금 40대 이하는 교육의 질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교육수준, 정보취득력, 글로벌 감각과 시각, 외국어 능력은 세계 어느 선진국 젊은이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필자의 세대가 모방과 추격으로 한국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렸다면, 이제 한국을 끌고 가기 시작한 40-50대 이하의 세대는 지식과 정보, 글로벌시각과 자신감으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안착시키고, 세계중심부로 끌어올릴 기량과 자질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국가지배구조 혁신과 융합의 미래
그러나 이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개개인의 자질이 우수하다고 반드시 공동체가 융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힘으로 결집되어야 한다. 관용과 포용,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문화가 서야 한다. 거기에 바른 국가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보와 자본, 상품, 지식 시장이 통합된 오늘날 세계의 국가간 경쟁력은 국가지배구조(governance)의 경쟁력에서 나온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지배구조와 사회의 보상유인제도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개혁은 정체되며 인재와 자원의 흐름은 왜곡되어 있다. 정치와 행정, 우리 사회전반의 시계는 너무 단기화되어 있다. 여기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개혁과 혁신은 단순히 개헌의 문제를 넘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 국가운영방식을 재설정해 나가는 일이다.
우리는 아쉽게도 해방 후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면서 이 문제들에 대해 충분한 토의와 숙의를 거치지 못했다. 우리의 제헌헌법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등 서구의 헌법, 국가운영골격을 모방해 급조한 것이었다. 반만년을 이어온 한국인의 습속, 문화, 의식, 사고체계, 행동양식과는 괴리가 큰 국가지배구조였다. 지난 70년의 한국의 성공은 이러한 법체계를 충실히 따라서였다기 보다 이를 탈법, 편법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는 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국가가 번성할 수 있는 국가운영체계를 새로 구성해 내어야 한다.
5년만의 정권교체는 정책의 지속성, 일관성을 줄이고, 정부 고위직과 주요 기관장들의 잦은 교체, 나아가서 사회전반의 시계를 단기화 시켜왔다. 대통령 임기, 정당구조, 선거제도, 행정부의 구성과 관료시스템,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 등에 대해 전반적 검토와 재구성이 필요해 보인다. 법의 개정도 필요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와 사회 운영을 모두 법조문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동체의 정신과 기풍, 상식, 문화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인사 방식, 정당간 경쟁, 보상유인체계 등 소프트웨어의 혁신과 이에 의한 국가운영방식의 쇄신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 지식 엘리트들의 덕성(德性)과 사명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변화는 긴 시간에 걸친 일관된 추진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정체를 벗어나 국민의 잠재력을 결집하고, 희망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시작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일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지금 대한민국 지식사회에서 활발히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의 유수 싱크탱크는 대부분 정부출연기관들이다. 독립적 시각,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이러한 논의를 이어갈 싱크탱크는 많지 않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이 이에 대해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지난 4-5세기의 서세동점에서 벗어나 동서양 세력이 재균형을 이루기 시작한 시대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력, 경제력, 군사력의 측면에서 만이 아닐 것이다. 지식수준과 문화에서도 그러하다.
결국 세계는 앞으로 동서양 융합의 문명, 융합의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제도, 문화도 동서양의 융합이 이루어져야 미래 세계가 평화롭게 운영될 수 있다. 19세기 후반 동양이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중국에서는 중체서용(中體西用), 조선에서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에서는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논의들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당시 서세동점의 기세에 눌려 나라마다 이를 실현한 정도는 달랐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제 이 일들을 맡아서 해 나가게 되길 바란다. 주위를 돌아보면 한국 젊은이들만큼 지금 이 일을 잘 해나갈 입지와 준비를 갖춘 나라도 찾기 어렵다. 이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희망과 사명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들이 만들어갈 한국과 세계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