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는 천연 부존자원(賦存資源)이 부족하여 오직 가진 것은 우수한 인적자원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이로운 경제 발전도 우수한 인력 덕분이고, 그러한 우수한 인력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정치적인 레토릭을 넘어 전통 경제학에서도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 교수는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은 전례가 없는 성과이고, 교육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연료 역할을 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였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의 고(故) 루카스 (Robert E. Lucas Jr.) 교수는 인적자본 (human capital) 축적이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학설을 주장하여,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주 엔진은 교육을 통해 길러진 뛰어난 인적자본이라는 것을 뒷받침하였다.
사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사회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하였고, 그러기에 국민들은 자식을 위한 교육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부모들이 소를 팔아 자식 대학 등록금을 댄다고 하여, 대학이 상아탑(象牙塔)이 아니라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이었다. 이처럼 교육이 출세의 기반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학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욕구도 매우 강하였다. 한 예로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하던 1957년 이승만의 양자 (당시 정권 실세 이기붕의 아들)이었던 이강석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편입학이 여론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일이 있었다. “정권도 자식의 학벌은 마음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 계기였다. 이러한 인식은 “학벌은 곧 본인의 능력”이라는 신뢰감을 심어 주었고, 한국민의 교육열은 더욱 강화되었다. 집안 배경에 관계없이 좋은 대학만 나오면 정부나 기업에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한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교육이 국가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기는 커녕, 우리나라의 큰 문제인 저출산의 한 원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도 한국의 교육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고, 사회적 기여에 대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나? 아쉽게도 여기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요즘 기업들은 “대학을 나와도 쓸모있는 인재가 없다”며 “일을 시키려면 처음부터 다시 교육시켜야 한다”고 불평한다. 반대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도 취직이 안 된다”며 “학교에서 쓸데없는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대학들은 “반값 등록금 때문에 교육과 연구에 투자할 돈이 없어서 국제적으로 점점 뒤쳐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고, 교수들은 “학생들이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취직에만 모든 힘을 쏟는다”며 불평한다. 반면 학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에 등골이 휘고 있고, 심지어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은 “자녀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출산을 포기하고 결혼마저 포기한다”고까지 말한다.
이제 교육이 국가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기는 커녕, 우리나라의 큰 문제인 저출산의 한 원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세직 명예교수 (現 한국개발연구원 KDI 원장)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은 시대에 적합한 인적자본을 육성하지 못하여, 국가의 장기 경제성장률이 5년마다 1%씩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 지식기반산업에는 창조형 인적자본이 필요한데, 한국의 교육은 계속 암기식 지식 전달 위주로 이루어져서 창조형 인적자본 양성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창의성을 가로막는 과도한 '공정성'의 함정
이처럼 한국의 교육이 ‘국가의 힘’에서 ‘국가의 짐’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부가 교육 목표를 잘못 잡아서일까. 가장 최근에 나온 2022 개정 교육과정 (2024년부터 시행)을 살펴보면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 육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력적 소통, 자기 주도성 등을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으로 적시하였다. 21세기 선진국 국민이 갖추어야 할 주요 능력을 잘 골라낸 것이다.
사실 김세직 교수가 지적한 학생들의 ‘창의성’은 이미 1997년의 제7차 교육과정부터 교육의 주요 목표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거의 30년 전부터 교육부는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학생들 창의성의 중요함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교육 목표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실천되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있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의 중앙집권이 강력한 나라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은 현실적으로 대학입시가 좌우하고 있는데, 대학입학전형 (특히 수학능력시험) 방식과 거기에서의 과도한 ‘공정성’ 추구가 학생들의 창의성 양성과 평가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단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 입학은 출세의 길로 여겨졌기 때문에, 대입 시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 선발이라기보다 신분 선발로 오해될 소지가 많았다. 마치 조선시대의 과거(科擧) 시험처럼 말이다. 교육 선발의 경우는 학생들의 현재 실력이 조금 모자라도 앞으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면 선발할 수 있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는 바로 이런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신분 선발이 되면 엄격하게 현재의 실력에 따라 뽑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므로 원칙적으로 대학 입학전형은 교육 선발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대입 전형은 서남수 전(前) 교육부 장관의 저서 (서남수, 배상훈 지음,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22)에 잘 설명된대로 신분 선발처럼 운영되고 있어, 소위 ’공정성‘이 가장 큰 고려 사항이다. 예를 들어 정시모집에서는 학생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자라온 환경은 어땠는지는 감안하지 않고 마지막 결승점에서의 수능 성적만 본다. 그것이 가장 논란이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 서울대학교에 들어온 정시 합격생의 분포를 살펴보면 강남의 부유한 학생들이 많고, 교육의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이 많이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대입 제도가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시킨다는 점이다. ’창의력‘이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엄격한 공정성이 요구되는 시험에서는 ’옳은‘ 답은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믿는 통념과 ’다른‘ 답은 인정받지 못한다. 즉 남과 다르게 생각하면 ’틀리는‘ 것이고, 오답으로 처리되어 점수가 깎인다. 심지어 엄격한 공정성의 요구는 서술형 주관식 문제의 도입마저 어렵게 만든다. 채점에서 개인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수능 방식대로 객관식 5지선다형 문제 출제가 가장 안전한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객관식 문제로 알려진 지식을 토해내는 시험으로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측정하지 못하고, 이런 평가에 12년간 익숙해지면 대학에 들어와서도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는커녕 많은 사람이 믿는 정답을 찾는 데에만 골몰하게 된다.
문명의 대전환과 교육의 혁신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미래에는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 창의성과 혁신 등의 핵심 역량이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입제도를 유지하면서 이런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의 인적자원은 세계 시장에서 점점 더 경쟁력을 잃게 되고, 그에 따라 한국의 산업 규모도 축소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비중도 줄어들면서 궁극적으로 국민들은 점점 더 못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불행한 결과가 뻔한데도 정치권은 교육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당장 성과가 나기 어렵고, 이해관계자가 많아 갈등만 불거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이 이처럼 폭탄 돌리기를 하는 동안,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위험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오늘도 우리의 젊은 세대는 나쁜 제도의 질곡에 얽매어 쓸모도 없는 지식을 외우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고, 상대평가로 인해 옆자리의 친구를 적으로 여기는 등 학창 생활을 불행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과연 우리 기성세대는 이러한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물론 이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AI 기술의 발달로 학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지고, 탐구 토론형 실험 교육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교실에서 획일적인 이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 가능한 현장 밀착형 교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서술형 주관식 답안의 채점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처럼 채점자에 따른 편차를 줄이고 신뢰할만한 수준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생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둘째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 인구의 급속한 감소는 많은 대학, 특히 지방의 소규모 대학들에게는 큰 위협이다. 하지만 동전의 다른 면을 생각하면 학령 인구의 감소는 전반적인 대입 경쟁을 완화하여 대규모 사교육 시장의 규모를 축소하고, 대학마다 학생 ’선발‘보다는 학생 ’모집‘에 신경쓰게 하는 구조로 바꾸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대학들이 학생 수요에 맞추어 특성화, 다양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는 긍정적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일찍부터 준비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인류는 지금 문명의 대전환 시대를 맞고 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은 인류의 생활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능력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므로, 미래 인재 양성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의 지원으로 2023년~2025년에 수행하였던 미래 교육에 관한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