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16개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시장·군수·구청장과 광역 및 기초의원에 일부 지역에선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겹쳐 있다. 총 4,241명의 일꾼을 뽑고(*1), 유권자는 각기 7~8장이나 되는 투표용지에 기표한다. 만 명 가까운 후보들이 저마다 지역과 나라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다. 좁은 국토가 선거 열기로 들끓었고, 이제 누군가는 당선의 축배를, 누군가는 낙선의 쓴잔을 들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축제 뒤편에서 마주한 리더십의 현실은 마냥 즐겁지 않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정치는 불신의 늪으로 빠지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진영 논리와 집단 이기주의의 성벽이 높아지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문법은 희미해졌다. 그 빈자리를 거친 언사와 노골적 선동, 표를 얻기 위한 현금성 포퓰리즘이 채우고 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앞장서 분열을 키우는 광경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며, 그들이 왜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지켜온 지도자의 근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제1덕목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인격과 품성이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은 ‘아레테(arete)’ 정신을 중시했다.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에서 비롯된 이 말은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인격적 탁월함’을 뜻한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반이 된 이 정신은 아테네의 현자들을 거치며 철학적 깊이를 더했다.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자각, 플라톤의 사리사욕을 억제하는 공공성,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실천적 지혜는 모두 이 정신의 다른 표현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리더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 역시 바로 이 도덕성과 공동체를 향한 무거운 책임감이다.
이러한 헌신의 정신은 로마 제국의 번영을 이끄는 주춧돌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품은 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군사력과 지리적 이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깊은 뿌리에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로마적 신념이 있었다. 사익보다 공익을, 개인의 야망보다 공동체의 운명을 앞세우는 시민적 의무와 지도층의 공공정신이야말로 로마를 로마답게 만든 정신적 기둥이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는 자유주의의 노력과, 공동체의 책임과 공공선(公共善)을 중시한 공화주의의 긴장과 조화 속에서 어렵게 형성된 문명사적 성취다. 그 뒤에는 수백 년 동안 권력의 전횡에 맞서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든 이기주의와 방종으로 흐를 수 있고, 공화의 이름은 독선과 권력 집중의 명분으로 변질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선이 흔들릴수록 이를 바로잡을 지도자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지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 기대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요동치는 세계 질서와 리더십을 키우지 못하는 토양
AI와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는 시대를 읽는 감각,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국가를 이끌 능력을 갖춘 리더십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난세인데도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리더십이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재를 육성해야 할 우리의 공교육은 깊은 위기에 직면했다. 창의성 협동성을 일깨우는 대신에 입시의 굴레에 묶였다. 과열된 사교육은 미래 세대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더 큰 비극은 공동체를 떠받칠 공존과 공생의 의식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청하고 설득하며 타협하는 덕목마저 희미해졌다. 존중과 협력을 배우지 못한 사회에서 정치권이 비전을 잃고 맹목적 진영 대립에 빠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각국은 준비되지 않은 인물이 권좌에 올라 국가의 운명을 흔드는 일을 막기 위해 나름의 지도자 검증과 육성 장치를 마련해 왔다. 미국과 서구 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순환 보직과 자체 검증을 통해 지도자를 훈련한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보적 헌법을 가졌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합법적 절차 속에서 히틀러의 집권을 막지 못한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견고한 제도와 성숙한 국민 의식이 함께 작동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비극의 문을 열 수 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난세인데도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의 이면: 공감 없는 엘리트와 책임 없는 투사
대한민국의 지도자 배출 경로는 기형적이라 할 만큼 왜곡되어 왔다. 물론 모든 정치인을 한데 묶어 말할 수는 없다. 한국 정치를 이끌어 온 사람들의 성장 과정은 크게 두 가지 극단으로 나뉜다.
첫째는 '도서관과 고시실'로 대변되는 엘리트주의 경로다.
사회적 감수성이 결여된 채 오로지 출세에 능한 이들은 정치를 타협의 장이 아니라 내가 맞고 상대가 틀렸음을 권력 실세에게 증명하는 기회로 활용한다. 공감 능력의 결핍은 국민의 아픔을 행정 절차로만 인식, 처리함으로써 민심을 밀어내고 끝내 정권의 기반마저 흔든다.
둘째는 '광장과 아스팔트'로 대변되는 투쟁주의 경로다.
타도와 부정의 문법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공동체를 아우르는 포용력과 미래를 설계할 책임 의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격과 품성이라는 기초 공사 없이 세워진 리더십은 흔들리기 마련이고, 이들은 자리를 지키고자 지지자들의 분노를 동력으로 삼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정부·정치권의 성찰 부족, 빈곤한 인재 양성
현재 대한민국의 리더십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장기 계획과 인재 양성책은 빈곤하기 짝이 없고, 문명사적 전환기라는 인식이 결여된 채 당면 현안에만 몰두하며 '내 사람' 위주의 좁은 인재 풀에 갇혀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도덕성 마비 증상이다. 지도자의 언어는 갈등을 완화하고 통합하는 도구여야 하건만, 최근의 정치 언어는 지극히 거칠고 폭력적이다. 승패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행태는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란한 말재간이 아니라 인격과 직결되는 '언어의 품격'이다. 대통령부터 여야 지도부까지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는다면 모두가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 것이다. 당사자가 양식이 있다면 말이다.

국민을 일깨우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도리다
"현명한 국민이 현명한 지도자를 배출한다"는 것은 선거 민주주의 국가의 통념이다. 그러나 대중은 스스로 각성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페리클레스(*2)가 전몰자를 기리며 시민의 자긍심과 책임을 함께 일깨웠듯,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지 않고 이성적 각성을 이끌어야 한다.
달콤한 공약에 현혹되어 미래 재정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자식·손자들에게 큰 짐을 떠안기는 일이다. 감정적 선동에 휩쓸린 국민을 일깨워 무엇이 국가의 미래와 국익을 위한 일인지 냉철하게 분별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리더십의 본질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결코 당선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후보자도 유권자도 결국 정도를 벗어난 샛길로 빠지고 끝내 나락으로 인도된다.
6·3 지방선거 당선자들에게 보내는 제언
이제 선거는 끝났고 사회를 책임질 일꾼들이 확정되었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을 당선자들에게 엄중하게 묻는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갈등과 분열 속에서 균형을 잡고 화합을 이룰 지혜가 있는가? 당선은 끝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자기 수련의 시작이다.
첫째, 정치는 성공의 왕관이 아니라 책임의 멍에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주민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끼고 몸을 낮춰 협력하는 팀워크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적대의 문법을 버리고 공존의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나를 반대했던 목소리에서도 진실은 숨어 있다. 품격 있는 언어로 대화하고 경청하는 능력이 곧 리더십이다. 설득력은 토론 상대자로부터가 아니라 방청석이 판단한다.
셋째,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출세주의의 늪에서 벗어나 '공헌과 책임'으로 원칙과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특히 선출된 교육감들은 책임 회피와 맹목적 평등주의를 조장하는 교육을 끊어내야 한다.
AI시대, 각자의 재능을 키우고 발휘하는 것이 어느때 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그 재능이 자기 성공의 도구에 그쳐서는 안 되며, 공동체를 위해 쓰일 때 비로소 품격을 얻는다. 바로 그 깨달음을 심어주는 것이 리더십 교육의 시작이다.

나가며: 다시 지도자의 길을 묻는다
수십 년을 정치 현장에서 수많은 인재의 부침을 목격해 왔으나, 최근처럼 지도자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다. 자리는 많으나 진정한 어른이 없고, 직함은 화려하나 본받을 인격이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고통스러운 자기 수련과 공동체를 향한 뜨거운 사랑, 무거운 책임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누가 당선되느냐'를 넘어 '어떤 인격을 갖춘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는 본질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책임과 헌신이 승리하고 도덕성이 존중받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선진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이다. 당선자들의 건승을 빌기에 앞서, 인격적 성숙과 공공을 향한 무거운 책임감을 엄중히 촉구한다.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는 누군가가 잠시 내어준 의자일 뿐이다. 주인은 유권자인 국민이다.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