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가 받은 혜택 국민의 사랑으로 거듭나야
- 서울대, ‘선한 인재’ 배출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현
-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국립대 하향평준화 안 돼야
- 서울대와 지방국립대의 교류와 협력 강화해야
- 시흥캠퍼스는 국제화와 지방화의 전진 기지로
- 서울대 국제화를 위한 획기적 정책 필요
-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받은 혜택을 개발도상국가로
- ‘천원의 아침식사’는 생활의 기본수요 충족
- 냉철한 이성으로 가슴이 따뜻한 서울대인
국문과 동문인 정희성 시인은 ‘타오르는 빛의 성전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고 설파했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생을 배출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만큼 서울대와 서울대인은 귀한 존재다. 이와 동시에 서울대의 사회적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é)를 요구한다. 필자는 제26대 서울대학교 총장 취임사에서 서울대인에게 ‘선한 인재’를 당부한 바 있다.
서울대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기에 서울대에 대하여 남다른 기대와 희망이 뒤따르지만, 반면에 질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에는 서울대 폐지론을 담은 청와대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 여론은 3분의 2 이상이 서울대 폐지에 반대했다. 이는 서울대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상징적 표지다. 이에 노 대통령은 더는 서울대 폐지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하향평준화의 경계
이재명 정부에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핵심정책으로 제시한다.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에 파격적인 재정·경제적 지원을 한다. 10개 만들기 주장의 저변에는 프랑스와 컬럼비아에서 진행된 대학의 숫자 매김과 일맥상통한다.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은 1968년 진보세력이 대학을 점거하고 사회개혁을 요구한 이후 13개로 분할되었다. 심지어 파리시가 아닌 지역의 대학까지 파리대 번호를 부여했다. 예컨대 68사태의 진원지인 낭테르대학은 파리10대학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대학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대학 간 대통합이 진행 중이다. 파리대의 분할은 결과적으로 대학경쟁력을 저하하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방소멸 시대에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착상이다. 하지만 자칫 대학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유일한 대학이 서울대다. 서울대와 지방대가 다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 필자는 총장 재임 중 서울대 시흥캠퍼스에서 서울대와 지방대의 교수·학생이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협력체계 공간을 마련한 바 있다.
사실 서울대가 국내에서 향유하는 독점적 지위는 전 세계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하버드를 포함한 아이비리그 대학과 같은 수준의 일류 대학이 여러 개 존재한다. 이웃한 일본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는 동경대학보다 경도대학 출신이 오히려 더 많다. 프랑스에서는 파리대가 분할된 반면에 최고 엘리트를 위한 그랑제콜(grandes écoles)이 존재한다. 그랑제콜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작동한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서 교수 채용 시 학과별로 3명 중 1명은 특정 대학 학과 출신이 아닌 사람을 요구한다. 그 표적은 서울대로 향한다. 이제 서울대와 서울대인은 겸허하게 국가사회의 실존적 요구에 응답하여야 한다.
'천원의 아침식사'와 학생 복지
서울대는 많은 혜택을 받은 만큼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서 향도여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가 ‘선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적 기초를 제공하여 서울대생들이 안락한 대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천원의 아침식사’를 마련하였다. 학생들이 생활비 부담 때문에 아침 식사를 거르고 우유와 빵 한 조각으로 때우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서울대생만 국가예산으로 식사를 제공할 수는 없다.
이에 ‘선한 인재 100백억 모금 이어달리기’를 시행하였다. 고 이순재 선배님이 1번 타자로 나선 결과 순조롭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시행 첫해 천원의 아침에 이어 둘째 해에는 아침과 점심, 셋째 해에는 아침과 점심에 이어 저녁까지 천원의 식사를 제공하였다. ‘천원의 아침식사’는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 전국의 국립·사립대학뿐만 아니라 심지어 회사에도 확산되고 있다. 국·공립 대학에서의 ‘천원 식사’는 이제 국가예산으로도 지원된다.
흔히 서울대는 강남 대치동 학원가 출신이 많이 입학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물론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나 이부진 신라호텔 대표의 아들과 같이 부유한 계층의 자녀들도 입학한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우수한 학생들이 상당수다. 학부 학생 중에 부모의 수입이 월 100만원 정도인 학생이 800명이 넘는다. 이들 학생은 등록금 면제 장학금만으로는 부족한 생활비 충당을 위해 과외에 내몰려 학업에 전념할 수 없다. 이들 학생들에게는 매월 20만원의 생활비 보조를 하였다. 기숙사 월 이용료가 13만원 정도이니 조금만 보충하면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한 배려다.

정체성 확립과 국제화의 전진기지
더 나아가 서울대 학생들의 정체성 확보와 더불어 국제화가 필요하다. 필자의 전전임인 이장무 총장께서 서울대 국제캠퍼스의 일환으로 시흥캠퍼스를 조성하여 전임 오연천 총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예일대학과 같이 학부 전 과정 기숙생활을 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1학년만이라도 기숙생활로 서울대생으로서의 연대(solidarity)와 정체성(identity) 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관악 캠퍼스는 이미 포화상태이므로 시흥캠퍼스에서의 프레시맨 (freshman)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학생회뿐만 아니라 심지어 관악캠퍼스 주변의 상인들까지 플래카드를 펼치며 반대하므로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시흥캠퍼스를 교육과 연구의 보충기지로 확립하기로 하였다. 예컨대 통일평화연구원을 시흥으로 옮기고 미구에 닥칠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남북학생교류도 시흥에서 가능하도록 준비하였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무난하게 진행되어 온 시흥캠퍼스 사업은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로 난관에 부닥쳤다. 이들은 서울대가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해 재벌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비난했다. 유신과 5공 때도 대학총장실이 이렇게 장기간 점령당한 적이 없었다. 6개월의 점령이 해제된 이후 시흥캠퍼스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삼성·현대차·SK 3대 그룹이 참여한 ‘시흥 모빌리티 시티’ 착공식을 가졌다. 그때 일부 학생들의 선동으로 시흥캠퍼스가 불발되었다면 서울대 발전의 큰 동력을 잃었을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는 인재와 미네소타 프로젝트
서울대의 국제화는 당면한 과제이다. The Times와 QS의 대학평가에서 서울대가 가장 부족한 항목이 국제화다. 이웃한 아시아의 홍콩대나 싱가포르국립대는 여러 여건이 서울대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 그럼에도 서울대보다 이들 대학이 더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결정적인 이유는 국제화에 있다. 이들 대학은 영어가 공용어인 영어권이다. 비영어권인 서울대는 국제화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수한 유학생들이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영어강좌가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아시아 어느 대학보다도 외국 특히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가 가장 많은 서울대 교수들조차 영어 강의에 소극적이다. 외국 유학생의 양과 질에서도 서울 소재 주요 대학보다 취약하다.
서울대는 200개에 가까운 전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MOU를 체결하여 학생과 교직원의 해외연수를 진행한다. 특히 최소 비용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단기 해외연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취임 시 4개에 불과하던 방학 중 단기 해외연수기관을 14개로 확대하였다. 파리, 런던, 마드리드, 베를린, 모스코바, 베이징, 도쿄에 이어 미국 각 대학과 호주에 이르기까지 실시하였다. 주임교수님들의 열정적인 지도에 호응하여 학생들이 열심히 수학한 결과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학생들은 해외연수를 통해서 처음으로 서울대생으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향후 선진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가에서도 해외연수를 넓혔으면 한다. 대학행정도 더 국제화되어야 한다. 법인화로 직원들도 교류대상인 공무원이 아니라 서울대에 전속적인 인력이다. 필자가 재임 중 확대 강화한 직원들의 해외연수도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소 다른 사안이지만 글로벌사회봉사단을 중심으로 전개된 개발도상국가에서의 봉사활동도 소정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6·25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상태에서 서울대의 연구역량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미네소타 프로젝트’다. 전후 한국의 부흥을 위하여 미국 국무성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미네소타대학이 담당하였다. 서울대학교 재건을 위해 교육·시설·장비 등을 지원하고, 서울대 출신들의 연수를 보낸 원조 사업이다. 서울대 10여 개 단과대학 졸업생들이 미네소타대학에서 연수 후 귀국하여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필자가 총장재임 중 미네소타 60주년을 맞이하여 이번에는 개발도상국가의 라오스 총장 일행도 함께 한 바 있다. 그때의 역사적 기록은 각 단대 교수들이 참여한 ‘미네소타 프로젝트 연구’로 남겼다. 이제 서울대는 미네소타로부터 받은 혜택을 개발도상국가에 베풀고 있다. 예컨대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국빈 방문하는 도중에 서울대 출신 의료진의 헌신에 감동하여 현지에서 서울대 총장실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 바도 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Cool head and warm heart).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함께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의 공동체
서울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지방대학과 함께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 당국도 서울대의 세계화를 위해 더욱 분발할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서울대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학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필자가 취임사에서 제시한 공동선(common good)에 입각한 ‘선한 인재’는 서울대인의 기본 정신이어야 한다.
머리 좋고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Cool head and warm heart)”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함께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굳이 맹자의 성악설을 따르지 않더라도 인간은 결코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사회 속에서 예(禮)를 다하여 끊임없이 인격을 도야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선한 인재’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국가사회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개교 80년에 이른 서울대는 ‘선한 인재들’이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