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를 맞다
기술 전환은 더 극적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인터넷과 이메일, 핸드폰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 겨우 한 세대 전인데, 이제 AI시대를 맞았다. 인류가 경험한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비유하여 AI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것은 AI라는 기술의 등장 자체보다 그 발전 속도와 파급력이다. AI는 그 자체 기술로도 대단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술 발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단순히 일하는 방식 정도가 아니라, 일자리, 산업생태계 국가경쟁력은 물론 인간의 삶 전체 인류의 삶까지도 바꿔 놓을만한 변화다.

지금이 대격변의 시기라는 점은 기후 위기에서도 나타난다. 기후 위기가 먼 미래에 지구의 앞날을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라는 것은 '코로나19'에서 잘 드러났다. 급격한 지구환경의 변화는 인류가 통제하기 어려운 전염병이나 재난을 가져온다. 코로나19의 직접적 원인은 인수공통 감염병의 확산이지만, 최재천 교수 같은 생물학자는 열대 우림에 수백 년 동안 잘 살던 박쥐들이 사람이 사는 온대지역으로 왜 북상했는지를 기후 변화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 변화가 감염병의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멈추는 경험을 한지 불과 몇 년 전인데도, 대규모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재난도 커지고 있다. 대형 산불은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극지방 빙하가 녹아서 많은 기후 이변이 생기고 있다. 얼마 전에는 히말라야에서 육지 빙하가 녹은 물이 거대한 홍수를 발생시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기후 재난으로 인한 곡물 가격의 변동도 심해졌다. 탄소 중립은 무역 규제로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기후 위기는 코 앞에 닥친 문제다.
우리의 경우에는 특히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이라는 문제가 국내적으로 대전환의 위협 요인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오래되었지만, 아직은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구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인구 규모의 축소가 아니라 인구 구조 자체의 근본적 변화다. 지금 20%인 65세 이상 인구가 2050년이면 40%대가 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출은 2023년 14.6조 원에서 2032년 34.8조 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2045년이면 태어나는 아이가 사망하는 사람보다 많은 지역은 대한민국에 한 곳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병역자원은 2020년에 33만 명에서 2040년이면 14만 명까지 줄어든다. 안보를 말로만 할 수 없는 이유다.
2041년이 되면 서울의 교실에서 학생의 1/3이 사라진다. 현재 대학 정원이 40만 명인데, 2023년 출생아 수가 23만 명이다. 대학 진학률이 75%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대입 연령이 되는 2042학년도에는 현재 입학정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입학 자원만 남게 된다. 불과 15년 정도 뒤면, 대학의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지방대학들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지방소멸은 사회시스템 전체의 축소와 붕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위기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변화는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 존재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새로운 기술, 지리적 전환, 인구와 전염병, 전쟁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바뀌었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와 우리의 적응력이다. 일정한 변화와 발전은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진보의 원동력이 된다. 문명이 발전하고, 인문분야와 과학분야에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갖게 되고, 기존의 오류를 극복할 수도 있다. 인류는 질병과 빈곤을 이겨내고, 전쟁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왔다. 동시에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어떤 변화에 대한 적응은 단순히 부작용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컸던 적도 많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화가 발생했을 때 그 부작용이 모두에게 골고루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 사회의 기득권은 오히려 이익을 취할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들은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AI 전환 이전에 가장 큰 근대적 기술혁명은 산업혁명이었다. 당시 인클로저 운동으로 공유지가 사유화되자, 대대로 땅을 경작하던 소농은 생계 기반을 잃고 도시로 밀려났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토머스 모어의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도시로 내몰린 농민들을 기다린 것은 하루 14시간이 넘는 공장 노동, 아동 노동, 비위생적인 빈민가에서의 열악한 삶이었다. 산업화와 기계화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지만, 숙련 수공업자의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기계를 부순 러다이트 운동은 군대에 진압됐다.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 과실이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토지와 공장을 독점한 계층은 그 사이에 부를 쌓았고, 일부 가문들의 부와 기득권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재난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미국의 대공황이나 한국의 IMF에서도 경험했다. 1930년대 당시 미국에서는 경제 붕괴와 기후 재난이 동시에 일어났다. 도시에서는 주식에 투자한 중산층이 붕괴하고, 농촌에서는 과잉 생산된 농산물이 소비되지 못하자 소작농 수십만 명이 저임금 떠돌이 노동자가 됐다. 대신 현금을 쥔 자산가, 살아남은 대기업과 은행, 소농으로부터 땅을 사들인 지주들은, 이후 미국 경제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한국에서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구조조정으로 대량 해고가 일어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이 일반화됐다.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 가장, 저숙련 노동자, 먼저 해고된 여성 노동자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현금을 보유한 자산가와 외국 자본은 폭락한 주식과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였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자산 양극화는 고착됐다. 지금의 소득양극화, 자산양극화는 그때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는 각 분야에서 어떤 차별적인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치게 될까? 몇 가지 사례를 생각해 보자.
우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대로, AI를 통한 자동화는 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부터 줄이게 될 것이다. 콜센터 상담원, 사무보조원, 번역·디자인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재교육 기회가 적은 중장년층이 그들이다. 과거의 자동화는 육체노동을 대체했지만 AI는 정형화된 지식노동도 대체한다. 반복 업무 비중이 높은 직종은 대체가 쉽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배울 시간과 돈, 이직을 버틸 자산도 부족하다. 생산성 향상의 이익은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과 주주에게 먼저 돌아갈 것이다. 사회적 재분배도 일어날 것이지만, 여기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국제질서의 변화와 AI 기술의 발전은,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더 크게 벌리게 될 것이다. 국제질서의 변화로 나타나는 공급망의 재편, 기후나 원산지 증명 같은 규제, 환율이나 금리, 원자재 가격 변동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자금력의 차이는 기업 규모에 따라 매우 달라질 것이다. AI 도입에 따른 투자, 사람에 대한 교육, 데이터 및 보안과 전문 인력의 확보, 다양한 정보력과 협상력 등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모두의 AI'를 천명하여 추진하고 있지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도 코로나 19나 2022년 강남역이 잠긴 서울 홍수에서 경험한 것처럼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다. 반지하 쪽방·고시원 거주자가 가장 취약한 주거 계층이다. 건설·택배·농업·환경미화 같은 옥외 노동자들, 냉방비가 부담스러운 독거노인들이 기후 재난의 첫 피해자들이 될 것이다. 어린이와 기저질환자들은 생물학적 약자이고, 이주노동자나 장애인도 기후 위기에 취약한 집단이다. 요컨대 기후 위기는 위험을 비용으로 전환시킬 수 없고, 피해를 입은 뒤에 회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지역적으로 보면 농어촌과 중소 도시의 고령자, 특히 운전을 못 하는 노인들에게 큰 위협 요인이 된다. 지방의 인구가 줄면 병원, 약국, 버스 노선,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응급 상황에서는 병원까지의 거리가 곧 생존 확률이 된다. 젊은 층은 대도시로 떠날 수 있지만 노인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유일한 자산인 지방의 부동산은 가격이 하락한다. 반면 자원과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그곳의 부동산 자산의 가격은 계속 오른다. 이 추세를 완화시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인구절벽은 국가적으로 보면 연금 재정 압박의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세대간 갈등으로 인해 국민적 유대감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거나 없는 현재의 빈곤 노인에게는 미래의 연금 재정이 이를 감당해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의 부담을 떠안을 청년 세대들은 입장이 다를 것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재정 압박이 커지고, 급여 축소 논의는 정치적으로 가장 목소리가 약한 집단을 향하기 쉽다. 이러한 구조는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연대를 약화시키게 된다.
돌봄 체계의 붕괴도 걱정이다. 가족 규모가 줄고 교류가 약화되면서, 가족이 담당하던 돌봄을 시장과 국가가 메워야 한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돌봄노동은 저평가되어 임금이 낮고, 이 공백은 이주노동자와 중장년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다. 안정적인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가구 사이에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돌봄 없이 고립되고 고독사 위험에 노출되는 독신 고령자는 지금도 매우 많다.
국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런 일이 이제 우리 앞에 다가올 국가적 위기들이다. 우리는 변화의 희망을 갖고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이 변화에서 누가 더 취약한가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고 희망에 부풀겠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불안과 분노, 체념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환의 계곡을 지나야 하고, 그 계곡에 낙오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위기를 감당하는 몫과 전환 이후의 결과를 획득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구분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전환의 충격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안전망을 다시 짜야 한다.
지금의 고용안전망은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정규직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잦은 이직을 겪는 노동자들은 그 바깥에 놓여 있다. 일자가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보호하는 체계로 바꿔야 한다. 직업을 바꾸는 동안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새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재교육과 소득 지원을 함께 묶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소수의 기업과 자산가에게만 쌓이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산업혁명과 외환위기가 남긴 교훈은 공정한 분배가 결코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환으로 큰 이익을 얻는 쪽이 전환의 비용도 함께 나누도록 세제와 사회보험 체계를 손보는 한편, 중소기업도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 전문 인력을 공동으로 지원해야 한다. '모두의 AI'는 구호가 아니라 이런 제도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셋째,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막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반지하와 쪽방 거주자의 주거 상향을 재난 대책의 일부로 보고 서둘러야 한다. 폭염과 한파 때는 냉난방비 부담 때문에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에너지 지원을 넓히고, 옥외 노동자가 위험한 날씨에 일을 멈추고 쉴 수 있는 권리를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넷째,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연금 개혁은 지금의 빈곤 노인과 미래 세대 어느 쪽도 버리지 않는 세대 간 합의여야 한다. 그 합의를 이끄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도 병원과 약국, 버스와 돌봄이라는 최소한의 삶의 기반은 지켜야 한다. 이것은 시장의 효율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내셔널 미니멈(National Minimum) 차원의 문제다. 거점 공공병원과 응급의료망을 유지하고, 노선버스가 사라진 곳에는 부르면 오는 수요응답형 교통을,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의료와 돌봄을 연결하는 지역 통합돌봄을 갖춰야 한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생존 확률이 달라지는 나라를 공동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국가는 기업과는 다르다.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붕괴시킨다. 국가는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에 공공선에 대한 최소한의 상생과 연대의 정신이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적 차원의 미래 대응전략을 필요로 한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중심이 되어서, 앞으로 이러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일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