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AI 시대, 교육의 길을 묻다

출간일 2026-02-01
조회수 397
막 오른 AI 시대, 교육의 길을 묻다
AI 기술이 교육 현장에 가져올 변화는 단순한 도구의 도입을 넘어선다.

한글이 쌓은 K-컬쳐,
그리고 한자(漢字) 문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창의적인 발명품은 한글이며, 이는 인류 문화의 보석 같은 존재다.민초(民草)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최고 권력자가 직접 문자를 제정한 일은 인류사에서 세종대왕 뿐이며, 이런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노마 히데키 교수는 그의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한글을 ‘문자라는 기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오늘 날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K-문화는 한글이라는 기적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한글 덕택에 빛을 잃은 것은 소위 한자(漢字) 문화다. 한자는 중국이 아닌 동양의 것이며, 우리도 이를 통해 지난 수 천년 간 고유 문화를 가꾸어 왔다. 한자에는 지혜가 들어 있는데, 예를 들어 두 획으로 완성되는 사람 인(人)은 받쳐주고 또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임을 나타내는 듯싶다. 사람이 나무 곁으로 다가가면 쉴 휴(休)이고 산과 더불어 지내면 선(仙),즉 신선이고 선녀다. 휴나 선을 그냥 소리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적잖이 아쉬운 일이다.

사람 그리고 인간(人間)

사람은 성장하면서 대부분 사회라는 커다란 공동체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인간(人間)이라 부른다.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을 덧붙인 것인데,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며 사회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는 어떻게 형성될까? 이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인데, 인류는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종교, 철학 그리고 자연과학 등의 학문 발전과 오늘의 사회를 이루었다.

태초에 인류가 집단을 이룬 것은 협력을 통해 더 많은 식량을 구하며, 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협력은 소통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표정과 몸짓 그리고 원초적인 언어가 바탕이었을 것이다. 그 후 곡물 경작이 시작된 약 1만 년 전부터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마을과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인간만이 지닌 언어는 더욱 발전했다. 하지만 전달되는 순간 바로 사라지는 언어는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남아일언(男兒一言) 중천금(重千金)’의 소중한 가치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자와 책이 이루어 낸 지적(知的) 혁명

책은 인류의 지식을 축적하고 전달하는 거대한 혁명이었다.

사실 긴 인류사의 대부분 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증발하는 언어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약 5,000년 전에 등장한 문자(文字)로 인해 인류는 혁명적으로 발전했다. 중국 황하 유역을 비롯한 이른 바 문명 발상지의 공통적인 특징은 문자를 쓰기 시작한 곳이라는 점이다. 언어로만 전달되던 지식과 정보는 문자를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쌓이기 시작했고, 그 덕에 인류는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기 그리고 철기시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언어와 더불어 문자가 자리 잡으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한 두 장 종이 위에 붓이나 펜으로 기록되던 지식은 그 양이 늘면서 책자의 형태로 가공되었다. 가치 있는 한 권의 책은 다시 여러 권으로 복제되었는데, 이 일도 모두 손으로 옮겨 쓰는 작업이 필요했다. 결국 책은 왕족이나 귀족들 만이 지닐 수 있는 고가의 귀중품이었다. 당연히 지식의 전달과 확산은 지극히 제한되었고, 인류는 그렇게 수 천년을 지냈다.

그러나 약 500년전 발명된 금속활자는 책자의 대량 출판을 가능케 하였고, 그 결과는 또 한 번의 혁명이었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에 출판한 책자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내용인데,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1687년 뉴턴이 발간한 ‘프린키피아’는 자연과학이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으며, 이는 훗날 산업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인간의 간(間)에 책이 본격적으로 새로이 자리 잡으며 인류는 사고방식, 지식체계, 그리고 세계관 등이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소위 지적 혁명을 맞았다. 지난500여년간 세상은 현격히 바뀌었다.


AI가 이끌고 있는 지적 혁명

그런데 50여년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컴퓨터 기술은 또 다시 새로운 지적 혁명을 야기하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추동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무한 확장, 무너지고 있는 지식의 경계 그리고 탈권위주의 등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 변화다. 우리는 문명사적 전환점에 놓여 있다.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식,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까지 다시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지적 혁명은 최근에 인공지능, 즉 AI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들어오면서 가속되고 있다. 그간의 언어와 책은 사람들을 잇는 단순한 도구였지만 AI는 지식을 스스로 만들고 또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존재다. AI는 이미 인간만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미술과 음악은 물론 소설 집필에서도 놀라운 역할을 하고 있다. AI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동반자 위치에 올라와 있다.

"교육은 한 마디로 ‘인간 만들기’다.
이제 인간 그 자체가 바뀌었으니
교육도 바뀌어야 함은 당연하다."

엉킨 실타래 같은 대한민국 교육 현실

교육은 한 마디로 ‘인간 만들기’다. 이제 인간 그 자체가 바뀌었으니 교육도 바뀌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리고 교육은 더 나은 미래의 문을 여는 핵심 열쇠다. 교육이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면 사회는 생기를 잃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이룩한 우리의 기적적인 발전에 교육이 기여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물어도 걱정이 많다. 교육 덕분에 융성했던 대한민국이 교육 때문에 쇠락하는 듯싶다. 우리 교육은 잔뜩 꼬이고 엉킨 실타래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지난 수 십년 동안 정부가 새롭게 들어설 때 마다 한결같이 교육 개혁을 목표로 내 세웠지만 한 번도 근본적인 전환은 이루지 못했다.

기술문명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항공기도 전쟁을 치르면서 크게 발달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하늘에서 폭탄을 쏟아 붓는 공군 전투기였고, 당연히 독일은 미국 전투기 격추에 진력했다. 미 공군으로서는 특히 대공포(對空砲) 의한 손실이 막심 했기에 이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전투기 개발에 주력했다.이를 위해 미 공군은 대공포를 맞고도 무사 귀환한 모든 전투기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 대부분의 총흔(銃痕)은 전투기 날개 주변에 집중돼 있음을 알았다. 따라서 이렇게 사격이 집중되는 부분에 튼튼한 철갑을 두르는 방안이 초기에 추진되었으나, 이는 곧 크게 수정됐다. 오히려 엔진부에 맞은 전투기는 이미 추락해 버렸기에 아예 문제로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 교육정책도 총흔처럼 드러나는 문제만 계속 보완하는 듯싶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자율형 사립고 폐지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수능 킬러 문항 제거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번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훗날 과연 어떻게 평가받을까?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긴 호흡의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교육은 혁명의 대상이 아니기에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당연히 정권을 넘어서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미래의 대한민국이 교육 때문에 추락할 것이라는 걱정이 그야말로 기우(杞憂)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수능 - 실타래에서 풀어야 할 첫 번째 매듭

"평가 결과에 모두 수긍한다는 이유로 이를 공정하다고 믿지만, 그러나 잃는 것이 더 많다."

그러면 잔뜩 엉켜있는 우리 교육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은 무엇일까? 어떤 조직이라도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평가를 잘 받는 일이며, 당연히 학생들에게는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다. 원하는 대학으로의 진학 여부도 성적이 결정한다. 결국 시험 문제를 어떻게 출제하고 관리하는가에 따라 배출되는 인재의 모습은 달라진다. 시험은 교육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다.

그런 측면에서 매해 50만 명이 넘는 수험생을 한번에 모아놓고 하루 종일 정답 하나를 고르게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우리 교육제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평가 결과에 모두 수긍한다는 이유로 이를 공정하다고 믿지만 그러나 잃는 것이 더 많다. 이런 평가는 과거 산업문명 시대 선진국을 좇는 추격형 사회에서는 유용했으나 이제는 혁신의 대상이다.

미래 인재는 창의성이 핵심이며 이는 주어진 문제에서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창의력은 오히려 해결할 문제를 찾아내는 힘이다. 그러나 다섯 개 보기 중 정답 하나를 고르는 수능 훈련으로 우리 학생들의 창의성은 고갈되고 있다. 서술식 문항을 한 해에 5%씩 10년에 걸친 계획으로 늘려서, 궁극적으로 주관식과 객관식 문항을 절반씩으로 만드는 시도를 해 보면 좋겠다. 아울러 지식과 정보의 합리성과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과 폭넓은 시각, 그리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협력하고 배려하는 인재로 키우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학의 자율성 – 실타래에서 풀어야 할 또 다른 매듭

대학의 자율성은 단순한 행정적 독립을 넘어 교육과 연구의 핵심 생명이다.

1970년 대한민국에선 100만 명이 넘는 새 생명이 태어났다. 반면 2020년에는 27만 명에 그쳤는데,이들이 빠짐없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도 현재 대학들의 절반은 사라져야 할 상황이다. 지역 사립대학 중 여럿은 학생 수 부족으로 이미 파산의 길을 걷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이 사태는 대학들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을 철저히 통제하며 획일화시킨 정부의 규제에 있다. 국공립대는 물론 사립대도 법률에 의해 교육부 장관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그 내용은 등록금 책정부터 총학장의 직인 크기까지 너무나 빡빡하고 촘촘하다. 자율성은 책임을 수반한다. 뒤쳐지는 대학은 교육 시장에서 자연히 퇴출되게 두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들은 폐교도 뜻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대학은 미래를 이끌어 가는 지성의 중심이며 자율성은 대학의 생명이다. 대학은 단순한 행정적 독립을 넘어 교육과 연구, 인사와 재정, 그리고 학사 운영 등 모든 사항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자율성 확보를 위해 우선은 우리 대학들 스스로가 진력해야 하며 정부와 사회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